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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이면서 글로리피(Glorifi) 싱어송라이터인 모유진씨가 독서를 통해 삶의 밑바닥에서 나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씁니다.

‘딸아,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잘 지내고 있니?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책을 열자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저자는 자신의 딸을 넘어 이 땅의 많은 딸들에게 엄마로서 안부를 건넸다. 상상이 가지 않는 목소리 톤과 표정, 곱게 피었을 주름을 애써 그려보느라 첫 문장부터 오래 머물렀다. 나의 엄마는 근로자생애최초 모든 사진을 태우고서 서둘러 떠났다. 얼마나 세상이 싫었으면 자신의 흔적을 다 지웠을까 싶어 그동안은 아쉬움도 궁금함도 조용히 닫아두었다. 그려지는 것도 없어서 사실 보고 싶은 마음도 가물거렸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서른, 충분히 엄마가 될 수 있는 나이에 내가 닿았기 때문일까.
어째서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가 성장한다고 하는 알티전자회생절차 지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차마 자라지 못한 채 저문 꽃을 그렸다. ‘엄마가 차라리 나무였다면 좋았을 텐데.’ 심성이 여리고 줄기가 가는 탓에 일찍 꺾어진 꽃은 이름만 남긴 채 흙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아빠가 세상을 떠날 때 나무 아래 뿌려진 것에 감사했다. 삶의 희망이 실오라기만큼도 보이지 않을 때 찾아가도 그 자리에 있어줄 나무라서.
신한은행 마이너스통장 이자오랫동안 홀로 있던 아빠 나무 옆에 엄마 이름을 썼다. ‘김경화.’ 그렇게 엄마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책을 넘겼다. 누군가의 딸이었던 적이 너무 오래되어 ‘엄마도 이렇게 생각했어?’ 하고 질문도 건네보고 잠시 대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애도 과정은 상실된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상실한 대상을 계속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법인파산신청 그 대상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하는 회복의 과정이라고 한다. 만약 이런 애도 과정을 생략하면 어떻게 될까? 프로이트는 애도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도달하고서야 지금에서야 엄마를 애도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한성 새마을금고 합격자소서 희 지음, 메이븐(2020, 초판 2013)


이제야 애도를 시도하게 된 데에는 희망을 남겨두고자 했던 누군가의 배려가 있었다. 혹시나 엄마 따라 삶을 포기할까 걱정했던 나의 멘토는 엄마가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으니 훌륭한 사람이 되어 만나자며 나를 토닥였다. 그때부터 그림이 마음 한편에 걸렸다. 훗날 정장에 구두를 신고 양손에 선물을 챙겨 엄마를 찾아가는 날을 그려놓은 한장이. 그러나 그림이 사진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은 수능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응시료를 면제받기 위해 처음으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주민센터에 갔다. 직원이 내민 빳빳한 종이 한장. 아빠 이름 옆에는 오랜만에 보는 주민번호가 적혀 있었다. 반면에 엄마 이름 옆에는 여백만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주민번호가 왜 안 적혀 있어요?” 묻는 말에 직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이미 말소되었다고.
“네?” 되묻는 물음과 함께 눈물이 고였다. “아니에요. 우리 엄마 살아 계신다고 했는데.” 이내 뚝뚝 흐르는 어린 눈물 앞에 직원은 당황했다. 엉망이 된 얼굴을 교복 소매로 닦아내며 재차 물었지만 주민센터는 민원으로 충분히 바빴고, 나는 수능을 앞둔 고3이었다.
주민센터 밖으로 나와 보이는 아무 화단에 걸터앉았다. 인생의 계획, 삶의 방향과 의미, 정체성과 같은 것들이 와르르 쏟아진 것처럼 갑자기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널브러진 것을 어디부터 정리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나씩 정리하다가는 이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너진 그곳을 통째로 걸어 잠그기로 했다. 잠시 빌려 쓰던 가족, 위탁가정을 떠나 어른이 되어야 하는 스무살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날로부터 대략 10년이 지나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 서른이 되었다. 저자는 서른을 두고 ‘우리나라 청춘에게 서른살이란 지금까지 누렸던 특혜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놓은 게 무엇이냐?”라는 식의 숙제 검사를 요구받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세상을 향해 나의 쓸모를 증명하느라 지친 나는 단숨에 편지에 빠져들었다. 파울루 코엘류의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구절과 함께 저자는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만 셈하지 말고, 그 시간을 잘 견뎌낸 자신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언제나 강한 척할 필요는 없고, 시종일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쓰지 않으면 그뿐. 필요하면 울어라, 눈물샘이 다 마를 때까지.”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엄마와 반대로 나는 글과 그림, 노래를 통해 세상에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여러번 삶을 절필하려 했던 마음조차 ‘겨울의 끝’이라는 곡으로 풀어냈다. 때로는 내 연약함을 지하실에서 꺼내 알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런 내게 정신건강의학과의 원장으로 20만명의 환자를 치료해온 저자는 ‘나를 돌본다는 것은 모든 감정을 허락한다는 뜻’이라고 명료한 대답을 해주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는 힘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데이비드 그리피스의 시와 함께.
저자는 훗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이 책이 세상 모든 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다. 인생에는 중요한 전환점이 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것, 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것. 엄마에게 ‘나’로 돌아가는 법을 알려줄 이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곱게 주름이 필 수 있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의 주인은 나이고, 상황을 잘 꾸려갈 수 있다고 여기는 법을.
여자와 엄마, 나 자신 사이 전환점을 앞둔 이가 있다면 이 편지가 그의 문 앞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딸의 결혼식 날 커피를 마시며 엄마 독립식을 치른, 또 세상이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땐 차라리 남들한테 ‘못된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로 당당히 맞서라고, 나는 언제나 그런 너를 응원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 엄마의 편지 한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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